황지우의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기다림의 떨림이 온전히 느껴지는 시구에 무언가 ‘쿵’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시인은 오기로 한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가슴에 쿵쿵거리고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내게 오는 것 같다며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고 말합니다. 그렇죠, 기다림은 가만히 있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먼저 보내놓고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굉장히 분주한 일입니다.
민선 9기가 시작됐습니다. 주민들은 또다시 기다림의 자리에 선 셈입니다. 좋은 단체장을 기다리고, 약속을 지키는 지방정치를 기다리고, 선거 때만 낮아지는 사람이 아니라 임기 내내 낮은 곳을 살피는 리더를 기다립니다. 골목의 상인은 장사가 나아지기를 기다리고, 청년은 떠나지 않아도 되는 지역을 기다리며, 어르신은 병원과 버스가 가까워지는 하루를 기다려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선거철의 발자국은 유난히 요란하지만, 취임 뒤의 발걸음은 자주 느려진다는 것을요. 공약집은 두꺼웠는데 실행은 얇아지고, “반드시 하겠다”라던 말은 어느새 “검토하겠다”로 변합니다. 주민들이 기다린 것은 현수막의 문장이 아니라 생활의 변화였는데, 정치는 가끔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만 크게 들려주는 듯합니다.
그래도 기다림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이번 기다림은 예전과 달라야 할 것 같습니다. 손뼉만 치며 기다리는 주민이 아니라, 묻고 확인하고 따지는 주민이어야 합니다. 좋은 리더는 저절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시민의 질문 속에서 단단해지고, 감시 속에서 흐트러지지 않으며, 비판 속에서 더 나은 길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죠.
민선 9기의 시간은 이제 막 출발했습니다. 앞으로 4년, 주민의 가슴을 쿵쿵거리게 할 발자국이 보여주기식 행보가 아니라 진짜 변화의 걸음이기를 바랍니다. 행정은 더 낮게, 정치는 더 가까이, 약속은 더 구체적으로 걸어와야 할 것입니다.
기다려본 사람은 압니다. 아무 발자국이나 반가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요. 중요한 것은 누가 가장 크게 다가오느냐가 아니라, 누가 끝까지 약속한 자리로 걸어오느냐입니다. 민선 9기를 향한 우리의 기다림도 그래야 합니다. 설렘만으로 맞이하지도, 실망만으로 돌아서지도 말고, 묻고 지켜보며 함께 길을 내야 합니다. 그 기다림 끝에 주민의 삶이 조금은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이 4년의 발자국은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도착할 것입니다. <김영희 디지털콘텐츠 부장>
PS; 혹시 월요일에 '한NU네' 기다리셨나요? 오늘부터 금요일에 찾아갈테니 금요일을 기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