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천 리 길 떠나면서 / 이별의 순간에 망설인다 / 사람은 다시 돌아올 수 있지만 / 가는 세월을 어찌 좇아갈까 // 세월에게 어디까지 가는지 물으면 / 멀리 하늘 저편이라고 하네 / 동쪽으로 흘러간 강물을 좇아가도 / 바다에 들어가면 돌아올 기약이 없다네 // 동쪽 이웃에서는 술이 익고 / 서쪽 이웃에서는 돼지가 살이 올랐네 / 잠시 하루 즐거움을 위해 / 이 세밑의 슬픔을 위로해 본다 // 흘러간 세월과의 이별을 탄식하지 말지니 / 곧 새로운 세월과도 이별해야 한다네 / 떠나가는 것을 돌아보지 말지니 / 나는 자네의 늙음과 쇠함도 물리쳐 보내리라.’
자첨(子瞻) 소식(蘇軾·1036~1101년)이 1062년 산시성 봉상부(鳳翔府) 관리로 재직하며 쓴, ‘한 해를 보내며(別歲)’라는 시입니다. 별세는 가는 해를 이별하는 행사입니다. 세밑에 서로 방문해 인사하는 것을 ‘궤세’라고 합니다. 술과 음식을 마련해 서로 맞이해 부르는 것이 별세입니다.
소식은 당시 봉상부 지부(知府)의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직함은 사법기관인 대리평사(大理評事) 소속 봉상부 첨판(簽判)입니다. 관직에 있으니 새해를 앞두고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은 엄두도 못냈습니다. 그 서운한 마음을 동생인 자유(子由) 소철(蘇轍·1039~1112년)에게 시로 적어 보냈던 것입니다.
형제는 5년 전인 1057년 모친상을 당했습니다. 그해 정월 예부(禮部)가 실시하는 과거시험에 합격해 진사(進士)에 급제했습니다. 3월 실시된 전시(展試)에도 붙었습니다. 그러나 그해 5월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 소순(蘇洵·1009~1066년)과 함께 귀향해 3년 동안 모친상을 치렀습니다.
그리고 1060년 다시 수도인 변경을 찾았습니다. 이듬해 8월 황명으로 과거시험(制科)이 실시됩니다. 자첨은 3등, 자유는 4등으로 급제했습니다. 아버지도 국가가 시행하는 예서(禮書) 편찬에 참여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아내이자 어머니를 여읜 삼부자가 모두 뿔뿔이 흩어져 한 해을 보내고 새해를 맞으니 마음이 어떠했을지 상상이 됩니다.
흐르는 강물을 따라 배를 타고 바다로 가는 것이 인생사라고 합니다. 배 안에 있는 우리는 그대로인 것처럼 보이죠. 그러나 시시각각 바뀌는 풍경에 취해 있다 보면 배는 어느새 바다와 가까워져 있다고 합니다. 강물은 바다로 들어가면 다시 돌아갈 수 없는데….
한 해가 저뭅니다. 상투적이고 의례적인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로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2024년이었습니다. 새해는 아무쪼록 일상이 모두 편안하시길 빕니다. 살다보면 살아진다고 하셨던 어머니의 말씀을 추신처럼 남깁니다. <남궁창성 미디어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