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든 눈을 돌려봐도 푸르름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강원도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죠. 하지만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나무 한그루 없던 헐벗은 민둥산이었던 때도 분명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황폐해진 산림은 나무 대신 돌과 먼지를 품었고, 해마다 쏟아지는 장맛비는 황토물을 실어 강을 메웠습니다. 강원도의 산은 그야말로 ‘벌거숭이의 절망’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적은 그 절망의 땅 위에서 시작됐죠. 국가 주도의 산림녹화 정책과 주민 여러분의 헌신적인 참여는 나무 한 그루로부터 출발했습니다. 강원도는 한국 산림녹화의 최전선이자 상징이었습니다.
아주 옛날에 할아버지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도 생각나는데요. 산마다 나무를 심고, 묘목을 지키기 위해 염소와 소를 산에 올리지 않도록 서로서로 막아주고, 마을 주민들은 번갈아 가며 산을 지켰다고요. 그 노력의 결실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산림녹화 성공국’이 되었고, 그 중심에는 강원도가 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아버지들이 있었습니다.
이 역사적 산림녹화 기록물은 지난 11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에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추진 9년 만에 거둔 쾌거입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며 전 세계의 인정을 받게 됐습니다. 등재된 문서 속에는 ‘민둥산에서 푸른 숲으로’ 나아간 치열한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단순한 환경보호의 기록이 아니라, 국가적 재건과 국민적 연대가 어우러진 감동의 서사입니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푸른 숲에서 지속 가능성과 인내의 가치를 깨닫습니다. 산림녹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 해, 두 해가 아니라 수십 년간 이어진 꾸준한 돌봄과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기후위기, 생태위기를 생각해 본다면 ‘한 세대가 뿌리고, 다음 세대가 거두는’ 이 철학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어떤 성과든 빠른 결과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느리지만 단단한 발걸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역사는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또 시민 참여의 힘을 새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자랑스러운 이 숲은 산림청이나 정부만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마을 주민 한 분 한 분께서 ‘우리 산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함께하셨습니다. 오늘날의 환경문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대신 해결해 주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오늘 심을 나무 한 그루’를 고민할 때 변화는 시작됩니다.
산림이 없던 시절, 강원도는 해마다 산사태와 홍수로 인명과 재산 피해를 겪어야 했습니다. 지금도 강원도는 산불과 기후변화의 최전선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 그 숲을 다시 만들었던 것처럼, 우리는 재난 앞에서도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회복력은 기술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웃과 지역, 공동체의 연결에서 비롯됩니다.
지금 강원도의 숲은 단순히 나무로 뒤덮인 풍경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 그리고 믿음이 뿌리내린 공간이며, 공동체가 자연과 맺은 약속의 결과입니다. 이 숲을 걷다 보면 우리는 한 세대가 남긴 푸른 유산을 마주하게 됩니다.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그 기록은 단지 과거의 찬사가 아니라, 미래 세대를 향한 따뜻한 당부가 아닐까요.
“당신도 심을 수 있습니다. 당신도 지킬 수 있습니다” <김영희 디지털콘텐츠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