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교회 성탄절 성극 무대에 섰던 저는 끝내 어깨를 펴지 못한 아이였습니다. 환하게 쏟아지던 조명보다 앞줄에 앉아 있던 어른들의 시선이 더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박수는 분명 따뜻했지만, 그 온기를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저는 너무 쑥스럽고 작았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무대란, 서 있는 사람보다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을 더 크게 움직이는 자리라는 것을. 연극은 관객을 이야기 속으로 깊이 끌어당기고, 타인의 삶을 빌려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지게 합니다. 낯선 이야기 속에서 오히려 가장 익숙한 감정을 발견하게 하고, 말로 다 하지 못한 위로를 건네기도 합니다.
강원 연극계 최대 축제인 ‘제43회 강원연극제’가 원주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오는 31일까지 치악예술관과 백운아트홀, 어울림소극장에서 이어지는 이번 무대는 단순한 경연을 넘어 지역의 삶을 비추는 또 하나의 거울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무대에 오르는 이야기들은 담백합니다. 그래서 더 깊게 다가옵니다. 인구소멸의 그늘 속에서 점점 잊혀가는 이웃의 얼굴,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에서 드러나는 가족의 균열, 사라져가는 탄광마을에 남겨진 기억들. 이는 멀리 있는 서사가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연극은 이 이야기들을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전합니다. 관객은 웃다가도 문득 멈춰 서고, 낯선 장면 앞에서 오래된 자신의 기억을 꺼내볼 것입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마음 한편에 남은 울림을 곱씹게 될 것입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무대 위에서 끝내 편안해지지 못했지만,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그때의 떨림과 어색함마저도 누군가에게는 작은 이야기로 닿았을지 모른다는 것을. 연극은 그렇게 한 사람의 서툰 순간까지도 다른 이의 마음에 스며들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번 강원연극제의 무대가 관객들에게, 그리고 연극계에 어떤 흔적을 남길지 궁금해집니다. 분명 그 이야기들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어느 지점에 오래 머물며 조용히 말을 걸어올 것입니다. <김영희 디지털콘텐츠 부장>
추신 : 광야 같은 강원지역에서 오늘도 무대를 밝히는 강원연극인 여러분을 응원합니다.